저는 오픈리 퀴어입니다. 제가 퀴어라는 걸 굳이 밝힐 필요가 없을 때는 밝히지 않지만, 굳이 숨기지도 않으며, 많은 표현을 하고 다닙니다. 유난히 페미닌한 옷을 즐겨 입습니다. 이렇게 제가 오픈리 퀴어가 될 수 있는 이유는 제가 능력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에는 성차별적인 정서가 보이는 형태든, 사람의 무의식적인 편견 속에서든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편견을 "깨부숴줬다"라고 하는 인터넷 커뮤니티 글은 대부분 "여성이라서 사람들이 나를 무시했는데, 좋은 능력을 보여주니까 아무 말 못 하더라"였습니다. 물론 저는 이런 일화를 긍정적으로만 바라보지는 않습니다. 하나는 그들은 다시 좋은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는 여성을 무시할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에서 능력주의와 엘리트주의가 성차별보다 더 심하다는 것을 나타내주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이 능력 차이가 많이 나면 많이 날수록 그 사람의 개성은 "이상한 것"에서 "그 사람의 특징"이 되고, 저에게 있어서는 사람들이 이상하다고 느끼는 퀴어리티가 그렇습니다. 저는 이걸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저의 능력은 저의 퀴어리티를 마음껏 표현할 수 있게 해 주는 도구이고, 그래도 특색으로 인정하는 게 사회의 시선이고, 퀴어리티를 사회에게 익숙한 것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목적입니다.

  저는 한동안 퀴어리티를 가진 사람들의 커뮤니티에서 많은 교류를 했습니다. "신드롬"이라는 닉네임을 사용했고, 지금도 저를 닉네임인 신드롬 님 이라고 불러주시는 분도 종종 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교류가 적어질 것 같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퀴어리티가 제 삶의 일부이고, 어떤 두 사람을 퀴어라는 연결로 묶기에 퀴어는 매우 느슨한 연결이기 때문입니다. 같은 지향성과 정체성을 가지고 고민한다면 어느 정도는 많이 연결될 것도 같지만요. 제가 어떤 사람과 서로 퀴어라는 공통점만 있을 때 친해지기란 쉽지 않다는 판단이었습니다.

  제가 해당 커뮤니티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퀴어가 아니게 될 것도 아니며, 퀴어를 향한 지원을 멈추지도 않을 것이고, 운동을 멈추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중 하나가 제가 오픈리 퀴어라는 점입니다. 하지만, 이게 나의 삶의 전부가 되기를 원치는 않습니다. 저는 하고 싶은 게 많기 때문입니다. 퀴어리티는 저의 "특색" 중의 하나입니다.

  어떤 비슷한 두 사람이 있는데 그중 한 명이 퀴어인 것을 알면, 아마 그걸 계기로 더 빠르게 친해질 확률이 높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나머지 한 명이 맥주의 일종인 스타우트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면... 저는 그 둘과 비슷한 속도로 친해질 것 같습니다. 저에게 있어서 제가 퀴어라는 것이 삶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제가 스타우트를 좋아한다는 것이 삶에서 차지하는 비율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제가 스타우트를 좋아하는 것이 저의 특색이듯이, 제가 퀴어라는 것이 저의 특색입니다. 그런 인간과 인간 간의 감정과 마실 것을 어떻게 비교하냐고 할 사람도 있을 텐데, 원래 그런 것은 사람마다 다른 법이니까요. 저는 유럽에 맥주를 마시면서 여행을 떠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있지만, 저의 퀴어리티 때문에 여행을 떠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제가 스타우트와 관련해서 양조장에 기부하지 않더라도, 제가 퀴어를 향한 단체에 기부하고, 퀴어리티를 가진 사람에게 지원하고 운동을 할 것이라는 이유는, 사람들은 스타우트를 좋아한다는 사실에는 말을 얹지 않지만, 퀴어라는 사실에는 말을 얹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게 단지 싫을 뿐입니다. 그래서 계속 지원하고, 운동하고, 투쟁할 것입니다. 저는 저의 삶의 그 어떤 일부라도 부정당하고 싶지 않으니까요. 그리고 남이 그런 경험을 하는 것도 원치 않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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