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CPC는 개인이 진행하는 가장 큰 알고리즘 문제 풀이 대회 중에 가장 큰 프로그래밍 대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UCPC는 많은 알고리즘 문제 풀이를 하는 사람이 참여하고, 올해에는 오프라인으로 대회를 다시 바꾸면서 이것저것을 알아보고 있습니다.
  UCPC 운영을 맡으면서 한 일 중 하나는 UCPC 본선 진출 자격을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학교별 1팀 선발과 여성 및 비전공자 팀 추가 선발을 넣었습니다. 이렇게 바꾼 이유는 여럿이 있습니다.


  하나는 UCPC를 좀 더 교류의 장으로 만들고자 했습니다. 흔히 들어봤을 케빈 베이컨의 6단계 법칙은, 지구에 있는 사람들이 6단계 이내에서 아는 사람과 연결될 수 있다는, 어떻게 보면 세상이 매우 좁다는 법칙이었습니다. 생각보다 나는 내 주위 사람만 아는 것 같은데, 해외에 있는 사람을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까요?
  실제로 사람은 자기 주위의 사람을 많이 알지만, 우연히 지금은 자기랑 떨어져 있지만 다른 먼 클러스터에 속한 사람을 많이 알고 있습니다. 얼핏 보면 관계가 없어 보이는 두 사람이 한두 사람을 거쳐 아는 이유에는 알고 있지만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의 역이 큽니다. UCPC도 이런역할을 하고 싶었고, 각 학교의 사람이 클러스터가 되어서 학교와 학교끼리 서로 교류하면 좋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또한, 여성 및 비전공자 팀 추가 선발하는 이유는, 특정 집단이 알고리즘 문제 풀이에 접근하기 힘들었던 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도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벽이 있는 이유에는 구조적 문제점이 작용한다고 말합니다.
  다음의 예를 봅시다. 어떤 대회에 선발되는 국가대표가 대부분 1~4월에 태어났고, 5월 이후에 태어난 사람이 없다고 합시다. 이는 생일이 실력에 영향을 끼쳤다고 판단하는 것보다, 생일로 사람이 갈릴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가 발생한다고 판단하는 것이 옳습니다. 이는 실제로 캐나다 하키 대표팀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캐나다 하키팀은 생년을 기준으로 리그를 나누는데, 5~6살 정도 되는 어린 나이에서는 출생 연도가 같아도 생일에 따라 큰 체격 차가 나게 됩니다. 이렇게 생일이 앞에 있는 사람이 뒤에 있는 사람보다 먼저 수상을 하고, 이것이 성장 후에 국가대표 선발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이렇게 우리가 언뜻 보기에는 아무 상관이 없이 "임의"로 정한 것에도 구조적인 차별이 발생합니다.
  이런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키팀의 문제로 돌아오면, 우리가 1~4월생만 집중하는 것이 아닌, 5-12월생에도 추가로 기회를 주면 됩니다. 이러면 하키팀에 참여할 수 있는 후보가 3배가 됩니다. 그러면 더 좋은 선수가 나올 가능성도 3배가 되겠죠. 이는 하키팀에 분명한 이득일 것입니다.

 

  프로그래밍에서의 여성도 예외는 아닙니다. 여성은 피임 도구가 발명되어 사용되기 전까지는 본인의 재생산 능력의 노예였습니다. 농업시대에서의 인구수는 곧 노동력을 뜻하니까요. 현재의 가치관은 많이 바뀌었습니다. 자연을 지배하고, 양적인 풍요를 추구하던 가치관에서, 조화를 꾀하고 질적인 행복을 추구하는 가치관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런 사회에서도 아직 과거의 구조적인 문제는 남아 있고, 이 구조적인 문제는 적극적으로 해결되어야 합니다. 사실, 이는 여성 개개인에게서만 이득이 아니라 프로그래밍 분야 전체에서 이득입니다. 여성을 추가로 지원하게 되면 결과적으로 프로그래밍 분야를 이끌어 줄 사람이 2배가 되는 것입니다.

  비전공자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왜냐하면 한국에서 전공은 선택하는 것이 아닌 경우도 많기 때문입니다. 성적에 따라 학교에 가는 경우가 많고, 대학의 이름을 위해서 과를 포기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프로그래밍 분야는 2016년 이후에 매우 인기가 많아졌으며, 프로그래밍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다른 성적 기준을 맞추지 못해 다른 과에 들어간 경우도 분명히 있습니다. 아쉬운 일이지만, 이 사람이 계속 프로그래밍을 즐길 수 있게 하고 싶었습니다.

 

  결국, 이런 본선 진출 자격 변경으로 인해서 이루고 싶은 것은 알고리즘 문제 풀이를 하는 사람의 결속력을 강화하며, 구조적 문제로 소외당하였던 사람도 참여시켜서 더 알고리즘 문제 풀이 커뮤니티를 풍요롭게 만드는 것입니다. 개인이 대회를 운영하기 때문에 이런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분위기가 확산하여, 프로그래밍 분야를 이끌어 갈 수 있는 사람이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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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히 컨닝이라는 말로 많이 불리는 부정행위를 뜻하는 올바른 영어 단어는 치팅입니다. 좁은 의미에서는, 평가를 볼 때 응시자가 하는 불법적이거나 비도덕적인 행위를 말합니다. 넓은 의미의 치팅은 규칙에 반하는 행위를 하는 것 전체를 의미합니다. 치팅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흔히 생각하는 컨닝페이퍼(cheat sheet)가 허용되지 않는 시험에서 몰래 보는 것이나 전자제품을 사용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리포트나 과제를 인터넷이나 지인으로부터 전부 베끼는 것도 치팅에 해당합니다. 물론 보여준 사람도 치팅을 한 사람입니다.

  저는 치팅을 매우 싫어합니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옛말이 맞을지는 몰라도 동시에 저는 치팅을 매우 많이 해 온 사람이기도 합니다. 치팅을 싫어하는 모든 사람이 치팅을 많이 하지는 않았으니까 오해는 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동시에 저는 치팅에 대한 강경한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계속 말하는 사람입니다. 제가 한 치팅은 남에게 과제를 보여준 적은 물론 있고 돈을 받고 남의 과제를 하기도 해 봤으며, 프로그래밍에 관련된 교육을 받을 때 소스 코드를 외부에서 가져온 것도, 평가를 볼 때도 사실상 cheat sheet을 사용한 것과 다름없는 행동을 한 적도 있습니다. 저의 부끄러운 이야기입니다.

  다행인 점은 이 내용 모두가 결국은 들켰다는 것입니다. 치팅은 어느 순간 들키게 됩니다. 남에게 과제를 보여주면 많은 부분이 보고 썼다는 느낌이 나게 됩니다. 이것이 쌓이면 여러 정황 증거가 쌓입니다. 소스코드를 다른 곳에서 베꼈으면 치팅이고 전부 잡아낼 수 있습니다. 소스코드 순서를 바꾸거나 주석을 추가하거나 하는 등의 행위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한 온라인 대회가 끝나고 나서 치팅을 잡기 위해서만 거의 30시간 정도를 사용했습니다. 이런 치팅을 많이 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이 잡는 치팅을 피할 수 있을까요? 물론 들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수법이 교묘하면 교묘할수록 찾아내기 힘든 것은 사실이니까요. 하지만 이런 치팅은 습관화가 되고 여러 번 하게 되며 반복하는 동안 실수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발각되면 이전의 치팅에 대해서도 처벌을 받을 것입니다. 사실, 이전에 했던 행위에 대해서는 물증이 없어서 치팅을 처벌하지 않고 있던 것이지 한 번 발각되면 이전의 치팅에 대해서도 같이 죄를 물을 수 있습니다.

  제가 치팅에 대해 강경한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는 이러한 치팅은 습관화가 되고 다른 사람의 의욕을 갉아먹기 때문입니다. 치팅은 고평가라는 보상을 얻는 매우 쉬운 수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뇌는 적은 노력으로 많은 보상을 얻을 수 있는 치팅을 계속하게 되고 만성화됩니다. 나중에 가면 그 보상에 대해서도 무뎌지게 되는데 이러면 모든 일에 대해서 노력하지 않으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치팅한 사람을 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본인은 노력했는데 타인은 적은 노력으로, 그것도 부당한 방법으로 고평가를 받은 것은 본인의 노력에 대한 가치를 저평가하기 쉽고 비슷하게 치팅을 시작하기 쉽게 됩니다. 이것이 반복되면 평가와 학습을 한다는 본래의 목적은 변질하고 사라져버립니다.

  치팅은 역사적으로도 오래되었고 시험이 존재했을 때부터 함께했습니다. 그리고 사실 많은 사람이 시도해 봤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누구나가 거쳐 갈 수 있는 길이기도 합니다. 사람이 고평가를 많아야 하는 이유는 많으며 여러모로 중요한 일이기도 합니다. 평가가 중요한 만큼 다른 사람은 고평가에 상응하는 기대를 하고 오히려 이 기대는 치팅보다 더더욱 끊기 힘든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상습적으로 치팅을 하는 것의 결말은 당장 타인의 기대를 충족하지 못하는 것보다 비극적입니다. 치팅을 하고 있었다면 다시 올바른 길로 돌아왔으면 합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노력해서 평가받는 것이요. 물론 이전과 같은 노력을 하는 방법을 까먹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시 시작하면 됩니다. 지금이라도 올바른 길을 걷는 것이 본인을 더더욱 잘 알고, 본인이 보람과 성취감을 느끼는 가장 좋은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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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오픈리 퀴어입니다. 제가 퀴어라는 걸 굳이 밝힐 필요가 없을 때는 밝히지 않지만, 굳이 숨기지도 않으며, 많은 표현을 하고 다닙니다. 유난히 페미닌한 옷을 즐겨 입습니다. 이렇게 제가 오픈리 퀴어가 될 수 있는 이유는 제가 능력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에는 성차별적인 정서가 보이는 형태든, 사람의 무의식적인 편견 속에서든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편견을 "깨부숴줬다"라고 하는 인터넷 커뮤니티 글은 대부분 "여성이라서 사람들이 나를 무시했는데, 좋은 능력을 보여주니까 아무 말 못 하더라"였습니다. 물론 저는 이런 일화를 긍정적으로만 바라보지는 않습니다. 하나는 그들은 다시 좋은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는 여성을 무시할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에서 능력주의와 엘리트주의가 성차별보다 더 심하다는 것을 나타내주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이 능력 차이가 많이 나면 많이 날수록 그 사람의 개성은 "이상한 것"에서 "그 사람의 특징"이 되고, 저에게 있어서는 사람들이 이상하다고 느끼는 퀴어리티가 그렇습니다. 저는 이걸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저의 능력은 저의 퀴어리티를 마음껏 표현할 수 있게 해 주는 도구이고, 그래도 특색으로 인정하는 게 사회의 시선이고, 퀴어리티를 사회에게 익숙한 것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목적입니다.

  저는 한동안 퀴어리티를 가진 사람들의 커뮤니티에서 많은 교류를 했습니다. "신드롬"이라는 닉네임을 사용했고, 지금도 저를 닉네임인 신드롬 님 이라고 불러주시는 분도 종종 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교류가 적어질 것 같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퀴어리티가 제 삶의 일부이고, 어떤 두 사람을 퀴어라는 연결로 묶기에 퀴어는 매우 느슨한 연결이기 때문입니다. 같은 지향성과 정체성을 가지고 고민한다면 어느 정도는 많이 연결될 것도 같지만요. 제가 어떤 사람과 서로 퀴어라는 공통점만 있을 때 친해지기란 쉽지 않다는 판단이었습니다.

  제가 해당 커뮤니티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퀴어가 아니게 될 것도 아니며, 퀴어를 향한 지원을 멈추지도 않을 것이고, 운동을 멈추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중 하나가 제가 오픈리 퀴어라는 점입니다. 하지만, 이게 나의 삶의 전부가 되기를 원치는 않습니다. 저는 하고 싶은 게 많기 때문입니다. 퀴어리티는 저의 "특색" 중의 하나입니다.

  어떤 비슷한 두 사람이 있는데 그중 한 명이 퀴어인 것을 알면, 아마 그걸 계기로 더 빠르게 친해질 확률이 높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나머지 한 명이 맥주의 일종인 스타우트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면... 저는 그 둘과 비슷한 속도로 친해질 것 같습니다. 저에게 있어서 제가 퀴어라는 것이 삶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제가 스타우트를 좋아한다는 것이 삶에서 차지하는 비율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제가 스타우트를 좋아하는 것이 저의 특색이듯이, 제가 퀴어라는 것이 저의 특색입니다. 그런 인간과 인간 간의 감정과 마실 것을 어떻게 비교하냐고 할 사람도 있을 텐데, 원래 그런 것은 사람마다 다른 법이니까요. 저는 유럽에 맥주를 마시면서 여행을 떠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있지만, 저의 퀴어리티 때문에 여행을 떠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제가 스타우트와 관련해서 양조장에 기부하지 않더라도, 제가 퀴어를 향한 단체에 기부하고, 퀴어리티를 가진 사람에게 지원하고 운동을 할 것이라는 이유는, 사람들은 스타우트를 좋아한다는 사실에는 말을 얹지 않지만, 퀴어라는 사실에는 말을 얹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게 단지 싫을 뿐입니다. 그래서 계속 지원하고, 운동하고, 투쟁할 것입니다. 저는 저의 삶의 그 어떤 일부라도 부정당하고 싶지 않으니까요. 그리고 남이 그런 경험을 하는 것도 원치 않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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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20211222일에 저는 워크숍을 하나 진행했습니다. 해당 모임은 어떤 사기업에서 진행하고 있는 모임이고, 참가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참가했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서, 각자 자기가 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 발표하고, 친목을 다지는 행사였고, 해당 멤버십 행사에서 모인 사람들과 좋은 식당에서 밥도 먹고, 이러저러 얘기도 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이번에 해당 워크숍은 "개더타운"이라는 서비스에서 진행을 했습니다. 관리자가 맵(여기서는 해당 사기업의 회사 건물이었습니다)을 구성해 놓으면, 방향키로 이동해서 해당 맵을 탐험할 수 있고, 그 중에서 가까이 위치한 사람과는 화상 채팅이 열리는 방식의 시스템이었습니다. 흔히 "메타버스"라고도 불리는 가상 세계의 서비스 중 하나입니다.

   사실, 조금 놀라웠습니다. 오프라인에서 진행하고 있는 여러 행사들을 온라인으로 되게 잘 구현하려고 노력한 흔적들이 많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이 컨퍼런스를 진행하고 식사를 하면 실제 대화나 사람간의 상호작용은 매우 소규모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이번 워크숍에는 약 16명 정도가 참여했는데, 16명이 모인다고 16명이 모두 서로 대화를 원활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워크3개의 팀으로 나누어서 진행했고, 제 팀에는 6명 정도가 있었는데, 이게 한 사람이 상호작용 할 수 있는 한계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내가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어쨌든 키보드를 사용하고 이동함으로써, 내가 장소와도 상호작용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이런 행동을 할 수 있다는 점이 사람의 집중력을 잘 유지시켜준다고 생각했습니다. 가령이면 OX퀴즈를 할 때, OX버튼을 누르는 것이 아닌, 사람들이 실제로 우르르 몰려다니고, 움직이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생각보다 현실감 있게 다가왔습니다. 이런 사항들을 생각보다 잘 반영한 프로그램이 아닌가하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얼굴을 맞대는 것과는 역시 달랐습니다. 몇몇은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여러 연결 문제로 진행에 딜레이가 생겼지만, 이것은 현실에서도 장비가 제대로 동작하지 않으면 점검을 해야 하는 것은 어느 곳이나 다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좀 더 느끼는 것은, 해당 모임에 대해 느끼는 피로감이었습니다. 사람은 대화를 할 때, 표정의 매우 미묘한 부분까지 관찰하는데, 반응의 약간의 딜레이에도 사람은 민감하게 반응을 하고 그래서 서로가 서로의 맥락을 공유하는 데에 좀 더 피로감을 느낀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 화자에게 집중을 한다는 신호(백채널링)의 전달이 느리거나 줄어들기 때문에, 계속 화자와 청자 간의 커뮤니케이션에 서로가 집중하고 있는지 확인을 해야 하고, 그런 커뮤니케이션 자체보다 부수적인 부분에 대해서 커뮤니케이션에 추가적인 코스트가 든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먼 거리를 이동해야하는 수고가 줄어든 것은 사실입니다. 어느 부분은 장점, 어느 부분은 단점을 잘 골라서 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대형 워크숍 같은 경우에는 장점과 단점을 어느 부분 저울질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보 전달이 좀 더 목적인 경우가 많고, 이동하기 힘든 사람들이 대부분인 경우가 많으니까요. 하지만, 사람들이 소규모로 친목을 하기 위해서 모이는 곳이라면 장점과 단점의 저울질이 힘들다고 생각하고, 물리적인 세계에서 만나는 것의 이점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휴학을 하고 있을 때도 동아리에 어떤 신입들이 들어오는지에 관심이 많았고, 그리고 사실 지금도 관심이 많습니다. 하지만 전혀 확인을 하지 못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동아리방에 신입생이 없기 때문입니다. 학교 기숙사를 굳이 들어 올 필요가 없고, 방역 수칙 때문에 동아리방에서 모이기도 힘듭니다. 사실 온라인에서 회의가 있기도 하고, 마음만 먹으면 서로 얘기할 수 있는 기회는 많습니다. 하지만, 동아리방에서 있는 사람에게 그냥 얘기를 하는 것과 온라인에서 만날 약속을 따로 잡아 이야기 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 입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기존 동아리원과 새 동아리원 사이의 결속력이 약해지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혹은 온라인에서 아예 할 수 없는 행동들도 있습니다. 제가 생각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포옹, 저의 큰 취미중인 하나였던 위스키와 칵테일을 마시는 것과, 파인 다이닝을 찾아다니는 것은 온라인에서는 아예 할 수 없습니다. 저의 생활 반경을 수도권에서 대전으로 옮기면서 아쉬운 것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대전에서의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어야 하는데, 저는 학교 안에서는 신입생만큼 새로운 도전이 허용되는 나이도 아니고, 아직도 좋은 요리와 좋은 술을 찾으러 갈 때는 서울에 있는 식당과 바를 찾아갑니다. 이것은 한국의 수도권 중심주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냥 생활 반경을 옮기면서 겪어야 하는 필연적인 변화 중에 하나도 있습니다.

   어쨌든 우리는 물리적인 세상 안에서 살아갑니다. 디지털이 세상을 좀 더 가깝게 만들어 주었고, 물리적인 세상의 영향력을 줄인다고는 했지만, 사실 세상을 가깝게 만들어 주기보다는 세상을 넓게 만들고 새로운 연결을 만들어줬다고 하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디지털이 세상을 가까이 만들어 준만큼, 물리적인 세상은 멀어졌다고 느낍니다. 사실 우리는 이런 디지털과 물리적인 세상을 적당히 선택하고 조율할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진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것은 디지털로 해도 상관이 없거나 혹은 더 좋고, 어떤 것은 디지털이 해결해 줄 수 없는지.

 

  사실, 저는 물리적인 세상에 큰 원망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어쩌겠나요? 주어진 것은 주어진 것이고, 계속 시도해 보는 것만이 답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개척할 수 있는 것은 개척해 보려고 노력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도 서울을 갈 준비를 해야겠습니다. 이제 씻고, 옷도 잘 챙겨 입고 화장도 하고 나가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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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검사를 4달 정도만에 진행했습니다. 에스트라디올-데포를 맞고 1주일 후에 피검사를 진행했고, 프롤락틴 수치가 28ng/mL, 에스트라디올 수치가 342pg/mL,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0.28ng/mL이 나왔습니다. 안티안드로겐을 사용하지 않았는데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매우 낮은게 이례적이라고 합니다. 저는 샘플이 바뀌지 않았나 의심할 정도였습니다.

 

피검사를 진행한 이유는 에스트라디올 변화에서 나타나는 감정변화입니다. 에스트라디올 농도가 낮아지는 피크에서 감정변화가 생기고(여러 기작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에스트라디올 데포를 맞는 주기를 줄여보자는 생각에서 피검사를 요청을 했습니다. 에스트라디올 데포는 그대로 비슷한 주기로 맞되, 프로기노바 경구투여를 하는 방법을 바꿀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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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래밍을 하고 싶지 않다. 이유는 여럿 있는데, 가장 큰 것은 매번 바뀌는 기술적인 사항을 찾아가는게 매우 힘들기 때문이다. 6개월정도 지난 repo에 npm i를 타이핑하고 본 2000여개의 보안 취약점을 보고, 지친다는 것을 가장 크게 느낀 것 같다.

 

학문적인 지식에는 반감기가 있다는 주장이 있다. 학문에서 활발하게 사용되는 지식 중 절반이, 새로운 발견으로 대체되거나 틀린것으로 밝혀지는 시간이다. 물론 엄밀하게 정의되어 있지는 않는 개념이지만, 프로그래밍은 2.5년에서 7년정도라고 한다. [1] 필드에서 어떤지에 대해서는 찾은 글이 없다. 프로그래밍과 컴퓨터공학을 하다보면, 어딘가로 계속 달려야 한다. 과거에 내가 배웠던 것은 현재에 와서는 낡거나 틀린 지식이 된다. 그래서 나는 이론전산학을 하는게 좋다고 생각했다. 왜 이론전산학을 하는게 좋다고 생각하냐면, 적어도 반감기가 2.5년까지 짧지는 않을 것이니까. 그리고, 나는 프로그래밍을 잘 하니까. 이 생각은 점점 바뀌어서 이산수학을 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바뀌었다. 물론, Tutte Graph 보다는 node.js가 내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을 더 많이 바꿔놓을 수 있겠지만, 어쨌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야하니까. 사실 수학의 반감기도 그렇게 길지는 않은 것 같다. 9.17년 정도라고 한다. [2] 물론, 내가 "올바르다"고 받아들였던 사실이 "틀린" 사실이 되지는 않겠지만.

 

내가 지금 공부하고 싶은 공부는 언어학이나 심리학이다. 나는 그렇게 학점이 좋지 않기 때문에 의전원에 갈 수 없다. 내가 현실적으로 언어학을 지금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은, 자연어 처리 관련 전산 대학원에 들어가는 것이고, 심리학을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은 지금 학교에서 바이오 및 뇌 공학과 복수전공을 해서 심리학과 관련된 대학원을 들어가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선택을 할 것 같지는 않다. 나는 수학과 프로그래밍을 꽤 잘 하기 때문에, 내 장점을 충분히 이용하는게 맞는 전략이기 때문이다. 만약에 내가 수학과 프로그래밍을 그렇게까지 잘 하지 않았다면, 집에 좀 더 빌붙어서 내가 맞는 전공을 찾아가겠다고 말했을까? 잘 모르겠다. 사실은 심리학의 반감기도 그렇게 길지는 않다. 3.3년에서 19년정도라고 한다. [2] 내가 심리학과 관련된 공부를 해도 위의 문제들을 만날 것이다. 심지어 이 분야는 진짜 과거에 많은 사실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거짓으로 밝혀지는 곳이다. 생각 해 보면, 세상은 빨리 바뀌기 때문에,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위치에 있는 학문을 필연적으로 반감기가 짧을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내가 원하는 두 가지를 모두 달성하는 일은, 마치 유니콘을 쫓는 것과 같지 않을까?

 

사실 난 이런 고민들을, 더 이상 이 분야에서 달릴 자신이 없다는 선언이고, 박수 받을 때 떠나고 싶을 뿐이며, 그냥 내 자리를 유지할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에 도망가는 도피라고 생각한다. 사실 지금도 도망치는 것 보다는 갓길을 선택하는거에 가깝지만.

 

나는 지금도 계속 달리고 있고, 다른 길도 이러저러 확인하고 있다. 다른 사람은 조금 쉬어도 좋다고 하지만, 어릴 때부터 계속 움직이도록 훈련 받은 나는 달리는 것이 나의 삶이기 때문에 달리지 않는 나의 삶이 예상되지 않아서 불안하다. 나의 삶은 컨베이어 벨트여서, 달리지 않는 것은 곧 뒤쳐진다는 의미였으니까. 그리고, 뒤쳐지면 영원히 따라잡을 수 없을 것 같고, 미래의 내가 언젠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니까. 나는 갓길이 되었든, 험난한 길이 되었든 어딘가로 계속 달려야겠다. 이렇게 고민해도 선택은 갈림길에 선 내가 하지 않을까? 어떤 선택을 해도 달리면 된 것이다.

 

출처

[1] https://spectrum.ieee.org/an-engineering-career-only-a-young-persons-game

[2] https://www.universetoday.com/97806/book-review-the-half-life-of-facts-why-everything-we-know-has-an-expiration-date/

[3] https://psycnet.apa.org/record/2012-16074-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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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더 이상 달리고 싶지 않은데, 달리지 않아도 괜찮다고 느낄만한 심리적으로 안정된 기반이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달리지 않는 나에게 나는 가치를 찾을 수 없어서 오늘도 달리고, 이는 다시 나에게 과부하로 다가와서 나를 해친다. 이런 연결고리가 삶이라면 더 이상 지속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연결고리를 끊을 수단을 찾고 있지만, 찾지 못한 것 같다. 그냥 통째로 내던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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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8월 13일에 혈액결과가 나와서, 전화상담을 했습니다. 직접 방문을 해서 결과를 들을 수 있고, 전화로 상담을 할 수도 있다고 했기 때문에, 저는 전화로 상담을 했습니다. 단, 전화로 상담을 하면 3,500원의 진료비가 나온다고 했습니다.

  2020년 8월 17일에 직접 방문해서 호르몬주사를 맞았습니다. 혈액검사 결과를 얘기 하고, 앞으로 어떤 식으로 건강관리를 해야 한다 같은 점을 얘기 한 이후에 데포주사를 맞았습니다. 근육이 많은 팔과 엉덩이중 선택해서 맞을 수 있었습니다. 용량이 크거나 아프지는 않았으며, 비용은 상담과 합해서 14,500원이 나왔습니다. 나중에 익숙해지면 자가주사를 하는 형태로 처방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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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성성이라는 것은 사회가 붙이는 것이기 때문에, 남성이 남성성에 갇힐 필요는 없다. 하지만 나는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이고, 나는 태어날 때 남성이라는 성별이 지정되었기 때문에, 사회에 있는 나는 남성성을 강요받는다. 전통적으로 남성성이라고 말함은 체력, 용기, 독립심, 리더십, 강한 의사 표현이다. [1] 나는 여기서 체력, 강한 의사 표현, 리더십 같은 특징에 가치를 둔다. 용기에 대해서는 가치 중립적이며, 독립심은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와는 거리가 있다. 또한, 나는 사회에서 요구되는 여성성도 가지고 있다. 전통적으로 여성성이라고 말함은, 우아함, 친절함, 공감, 겸손, 섬세함이다. [1] 이 특성들은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와 일맥상통한다.
  나는 신체 자체에 대한 성별 불일치감을 다른 트랜스젠더처럼 크게 느끼지 않는다. 내가 신체 자체에 대해 성별 불일치감을 느끼는 거의 유일하다시피 하는 부분은 내가 임신을 할 수 있는 몸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른 내가 느끼는 성별 불일치감은 대부분 사회적인 시선에서 나온다. 솔직히 나는 내 키와 체격이 마음이 안 든다고 생각하지만, 신체적 성별 불일치감이냐고 물으면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사회가 나의 키와 체격 때문에 나를 여성으로 바라봐주지 않는다는 점은 트리거가 되고, 이는 나의 성별 불일치감에 일조한다.
  전통적인 남성성을 추구하지 않는 것도 아니며, 신체적인 성별 불일치감을 크게 느끼지도 않는데, 왜 호르몬 치료를 받냐고 나에게 물어보면, 그것은 내가 사회에 받아들여지기 위한 노력이다. 사회에 순응하지 않는 나의 표현을 쓰면, 나의 호르몬 치료는 잘못되었다.
  어릴 적부터 나의 여성성을 표현하려는 시도는 많이 제지당했다. 실제로 내가 여성적인 취미라고 보이는 뜨개질을 하고부터 좋아하는 색이 분홍색이라고 말하는 것까지 많은 사람은 한두 마디를 얹었다. 내가 머리를 기르면 사람들은 칼같이 그 머리를 자르려고 했고, 내 머리를 어울리지 않는다고 표현했으며, 짧게 자른 나의 머리를 좋다고 표현했다. 그 사람들은 스트레스가 쌓여 가위로 내가 내 머리를 자르는 행위에 대해서 '이렇게라도 자르는 게 어디야.'라고 말했을 수도 있다. 내 주위의 사회는 나의 여성성을 외면했으며, 나의 성급함은 정제되지 못했고, 나의 다정함은 갈 곳을 잃었다. 나의 여성성은 억압되어왔다. 반면에 나의 남성성은 큰 성공을 이룬 것 같다. 이래서 당연히 모두가 나를 남성으로 인식했고, 나조차도 나를 사회적 남성성에 빗대어 인식했다. 나는 우아함, 공감, 섬세함 등의 가치를 기르는 데에 멀어졌고, 오히려 내 주위의 남성 사회 평균보다 낮아졌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내가 남성 사회에서 불쾌함을 덜 인식했던 이유는, 나에게서 전통적인 남성성을 찾아볼 수 있어서 그걸 선택적으로 표출했고, 또한 내 주위에서 내 여성성을 인정해 주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나는 나에게서 여성성을 찾아주는 사회를 찾아가야 했고, 찾아갔다. 흔히 말하는 얼굴을 보며 얘기하는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사회가 내 여성성을 하나도 찾아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나의 큰 체격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내가 가장 크게 성별 불일치감을 느낀 곳은 기초군사훈련을 받은 4주 동안이다. 내가 보던 가장 남성성이 강조되는 사회였고, 나는 이 사회에 적응하지 못했다. 이 사회는 나에게서 모든 여성성을 표현할 기회를 주지 않았으며, 그런 점은 나에게 압박과 불안, 그리고 공포감으로 나타났다.
  성별 정체성은 내가 정하지만, 사회적 성별은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적 성별은 사회가 정하고, 사회적 성별이 내가 원하는 대로 비치기 위한 노력을 할 수 있지만, 모든 노력이 성과로 다가오는 것은 아니다. 나는 이를 위해서 강력한 수단을 써야 했고, 정체화와 호르몬 치료는 그런 사회가 나를 받아주게 하는 거의 유일하다시피 한 방법이었다.
  정체화를 한 이후에, 누구보다도 성별 고정관념을 타파하고 싶은 사람인 나는 사회가 만들어 놓은 여성성이라는 고정관념에 갇혀버렸다. 머리를 기르지 않고 짧게 자른 여성도 여성이다. 하지만 나는 머리를 길게 기른다. 마른 몸을 동경하지 않는 여성도 여성이다. 하지만 나는 마른 몸을 동경한다. 치마를 입지 않는 여성도 여성이다. 하지만 나는 치마를 입는다. 나는 나 자신에게 여성성을 강요하고, 그래야 사회가 나를 그나마 여성으로 봐준다는 점을 잘 안다. 동시에, 남성으로 사회가 나를 바라볼 때는 느끼지 못했던, 여성으로 사회에서 비칠 때 사회가 나에게 주는 상처와 억압을 느끼고 있다. 몸의 상처도 있다. 나에게는 아직도 아물지 않은 왼쪽 다리의 상처가 있고, 사회적 여성성에 맞춰 제모하다가 얻은 상처이다. 그리고 마음의 상처가 낫는 것은 몸의 상처가 낫는 것보다 느리다.
  모든 사람이 마스크를 끼고 다닌다. 여성으로 비치는 데에 얼굴의 지방배치나 하관도 영향을 끼치는데 마스크는 이를 완벽하게 가려준다. 내가 머리가 조금 길고, 내가 치마를 입고, 조금만 높은 목소리를 낸다면, 내가 여성으로 비치는 데는 문제가 없다. 사람들은 내가 남성인데 여성복을 입었다고 생각하기보다는, 내가 여성인데 키가 매우 크다고 생각하기로 했나 보다. 여성성에 부합하기 위해 나는 머리를 길렀고, 머리를 기르는 것은 내가 나갈 때 준비하는 시간을 늘린다. 옷도 골라서 입어야 하고, 여성복은 의도적으로 불편하게 설계된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편의성이 없다. 나는 왜 단추 방향이 블라우스와 와이셔츠가 반대인지도 모르겠고, 왜 청바지에 앞주머니가 없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제야 왜 많은 여성이 핸드백을 들고 다니는지 이해했다.

  길거리를 걸어갈 때, 장사하는 사람이 집요하게 나에게 말을 거는 경우가 늘어났다. 같이 얘기하는 사람이 나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 경우가 늘어났다. 내가 한번 말하면 들었던 것을 두세 번 말해야 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내가 여성적인 이름과 외형을 가지고 사람에게 조언할 때, 내 조언을 무시하는 일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이런 것은 나만 느끼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이런 여성에 대해 무의식적이든 의식적이든 깔린 성차별은 수치화가 될 수 있을 정도로 나타났다. 가령이면, 여성이라는 정보는 취업에 악영향을 준다. [2] 나는 아직 여성적인 표현을 하고 구직활동을 해 본적은 없기 때문에 느끼는 차별에 대해서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일상에서 느끼는 차별과 같거나 혹은 더 큰 수준의 차별을 느낄 것 같다는 생각이 있다. 나는 나의 자기표현과 지적 성취도 중요하기 때문에, 실제로 내가 사회에서 직업을 구하고, 논문을 쓰고, 발표하고 남을 설득하려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편한 수단은 남성성을 사용하는 것이다.
  사회적 남성성은 유용하다. 나를 표현하고 내가 받아들여지기 위해서 남성성을 사용한다. 사람들이 나의 말을 듣는 이유가 그냥 내가 그런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젠더에 무관한 게 아니라, 그 사람들이 나를 남성으로 인식하고 있어서라는 이유는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기 충분했다. 그래서 나는 나의 유용한 남성성을 아예 버리지 않기로 했고 상황에 따라서 이 둘을 선택하기로 했다. 어떤 사회에도 속해 있지만 어떤 사회에도 속하지 못하는 교란자가 된 것이다. 나는 내가 젠더에 관련 없이 원하는 방식으로 표현되기를 원하지만, 사회는 내 표현을 젠더에 가두어서 억압한다.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의 결론이 호르몬 치료까지 온 것이다.

  나의 호르몬 치료는 잘못되었다.

 

[1] Vetterling-Braggin, Mary (1982). "Introduction". "Femininity", "masculinity", and "androgyny": a modern philosophical discussion. Totowa, N.J: Littlefield, Adams. ISBN 9780822603993.

 

[2] Research: To Reduce Gender Bias, Anonymize Job Applications https://hbr.org/2020/03/research-to-reduce-gender-bias-anonymize-job-applic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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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년 8월 10일 화요일에 풀 배터리 검사 결과가 나왔고 이에 대해 상담하러 갔습니다. 선생님은 검사 결과를 상세하게 설명해 주셨고, 저에게 호르몬 치료를 진행하고 싶으면 진단서를 발급해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F64.9라는 코드가 적힌 진단서를 발급해달라는 얘기를 했고, 진단서를 발급해주셨습니다. 또한, 풀 배터리 검사 기록지의 사본도 같이 가져갔습니다. 총비용은 만원이 조금 넘게 나왔던 것 같습니다. 다음 상담은 9월 2일 목요일이 될 것 같습니다.

  2021년 8월 11일 오전에 대전의 민들레의원을 찾아갔습니다. 처음에 전화했고, 호르몬 치료를 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하니까 진단서가 있어야 하고, 있으면 가지고 오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진단서를 가지고 민들레 의원에 방문했습니다. 저에게 MtF 치료 동의서라는 문서를 주셨고, 해당 문서에는 호르몬 치료가 어떤 것이고, 어떤 질환들이 발생할 수 있으며(호르몬은 간에서 처리되며, 콜레스테롤과 유사한 작용을 하므로 심장 혹은 간에 관련된 질환들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몸에 어떤 변화들이 생기는지에 대해서 적혀 있었습니다. 또한, 해당 병원에서는 우울증을 포함한 다른 정신질환이 있는 경우에 호르몬 치료를 진행할 수 없다 같은 내용이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성별 불일치감을 느끼는 사람에게 흔한 우울증 같은 질병이 있는 경우에는 추가로 얘기가 필요하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동의서에 서명하고, 혈압을 잰 다음에 진료실로 들어갔습니다.

  진료실에서는, 호르몬 치료가 어떤 것인지, 진단은 어디서 받아 왔는지 등등을 말해줬고, 제가 호르몬 치료를 받는 만큼 호르몬 치료에 대해서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호르몬 치료를 받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등을 상세하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추가로 성 재지정 수술을 받을 생각은 있는지, 후에 자손을 남길 생각이 있으면 냉동 정자 생각은 있는지, 현재 파트너가 혹시 있고 호르몬 치료를 한다는 내용을 알고 있는지 등등을 물어봤습니다. 저는 추가로 풀 배터리 검사지를 전달해 드렸고, 필요한 내용을 의무기록에 기록한 것 같습니다.

  민들레의원에서는 처음에는 매일 안드로쿨을 먹고, 졸라덱스데포주사를 2주에 한 번 맞고, 혈액 검사를 3개월에 한 번 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지만, 주기는 예후를 보면서 조절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현재 프로기노바는 재고가 없어서 제공하지 못하지만, 9-10월 정도에는 다시 재고가 채워질 거라고 하셨습니다. 나중에는 안드로쿨을 먹는 주기나 혈액검사를 하는 주기를 늘린다고 하였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남성호르몬 레벨이 낮아지는 것을 원치 않아서 안드로쿨을 사용하지 않는 방향으로 호르몬치료를 진행하고 싶다고 말했고, 원하면 그렇게 하면 될 것 같다고 말해주셨습니다.

  처음 가면 호르몬제를 바로 투여하지 않고, 소변과 혈액 검사를 진행합니다. 비용은 6만 원 정도가 나왔으며, 혈액 내 호르몬 비율 같은 경우에는 비보험으로 들어가서 가격이 있다고 합니다. 혈액 검사는 5일 정도가 소요된다고 하며, 5일 후에 전화를 주면 예약을 잡거나 방문을 해서 호르몬 치료를 받으면 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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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19일 오전 9시 30분 부터 12시 10분경까지 풀배터리 검사 두번째를 했습니다. 이번에도 역시 자세한 검사 내용은 검사가 오염되기 때문에 말 하지 않겠지만, 정답이 있는 검사가 아니라 그냥 본인의 생각을 얘기하면 되는 검사였습니다. 그래서 부담스럽지 않게 제 생각을 말했던 편인 것 같습니다.

  10시 50까지 정해진 검사를 하고 쉬었다가 11시 부터 검사를 다시 시작했고, 여기서는 제 과거 일들이라든가, 제가 과거의 어떤것들을 느꼈고 어떠한 계기들이 있었는가, 그리고 현재 제일 고민하고 있는 것은 어떤 것인지 등등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젠더 디스포리아와 관련된 것은 여기서 말 했는데, 제가 호르몬 치료를 받고 싶은지, 제가 검사지에 작성한 여성상과 남성상에 대해서 물어보시면서 제 여성상과 남성상은 사실 양쪽 성별 모두가 이룰 수 있는 것인데, 왜 굳이 다른 성별이 되고 싶은지 등등을 물어봐서 상세하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제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가감없이 말했습니다.

  또한, 제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 추측되는 다른 종류의 정신질환에 대해서도 길지 않게 물어보았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섹슈얼한 부분의 이야기가 메인이 되어서 저는 이 부분의 이야기를 되게 많이 한 편인데, 말하기 힘든 주제일텐데 자세하게 말해줘서 좋다라는 얘기도 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정신과 의사에게도 말하기 꺼려한다고 합니다.

  검사 결과는 다음 진료인 8월 10일 화요일에 같이 나온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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